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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998년 1월 5일 금모으기 운동2025-06-24 15:34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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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세기말의 공포와 새천년의 기대보다 먼저 찾아온 건 imf라는 생소한 이름의 위기였다. 열심히 살기만 했던 국민들이 평생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과소비 때문에 갑자기 국가가 경제위기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쉬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어쨌든 국가가 위기에 빠졌다는 익숙한 프레임에는 금방 적응하였다. 사실 전쟁, 독재, 혁명을 거쳐낸 국민들에게 위기가 없었던 지난 10년이 오히려 더 생소했을 지도 모른다. 평범하게 살고 있던 소시민들에게 경제위기가 대체 무슨 의미였는지는 모르지만, 환율에 영향을 받는 식료품의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고, 대기업들의 부도가 이어져 정리해고 된 직장인들이 길거리를 서성였다. 어느때보다도 각자도생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은 때에 어느나라 경제사에서도 없었던 일이 일어났다. 

국민들이 나라를 위해 금을 모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금모으기 운동이었다. 시초는 97년 11월 새마을 부녀회 중앙 연합회의 애국가락지 모으기 운동이었다. 당시에는 금을 모아서 국가에 헌납하는 운동이었는데, 이후 전국적인 금모으기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금모으기 운동은 금을 국가에 헌납하는 방식과, 금으로 국채를 사는 방식, 그리고 금을 은행에 파는 세가지 방식으로 진행 되었다. 이때 전국적으로 모인 금은 227톤이었다. 당시 한국은행에서 보유하고 있던 금이 14.5톤 밖에 안되었던걸 생각하면 한국은행 보유량의 15배, 달러로는 22억 어치의 금이 모였던 것이다. 

원래의 취지는 이렇게 모인 금을 기업들이 사서 이를 정부에 예탁하는 방식으로 국가신용도를 올리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당시 금을 구입한 기업들은 금을 정부에 예탁하지 않고, 해외에 내다 팔아 버렸다.당시 국제 금시장에 너무 많은 금이 한번에 나오는 바람이 금값이 폭락할 정도였다. 또한 일부 대기업 상사들은 중간에 유령회사를 하나 끼워넣는 방식으로 금을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면서 정부의 세금환급을 통해 이득을 챙기기도 했다. 당연히 불법이었다. 일부 대기업 상사라고 표현은 하지만 회사이름은 지금도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이었다.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긴 했으나 금모으기 운동은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놀라운 일로 평가되고 있다. 어느 국가의 경제위기가 국제적인 이슈가 될 때면, 지금도 한국의 금모으기 운동이 경제위기 극복의 사례로 소개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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